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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프리카 한달 생존기

짧은 버전의 근황입니다.



Q : 잘 지내십니까?

A : 아니요. 그럴리가요. 잘 지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Q : 어떻게 지내십니까?

A : 정말 더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은 정말정말 소중한 것이였어요.

Q : 지낼만 하십니까?

A : 말씀드렸잖아요. 지낼만한 환경이 아니라니까요.

Q : 음식은 좀 맞으십니까?

A : 음…굳이 따지자면 맞긴 한데…돌이 자주 나와서 이가 부서질거 같은거랑…사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음식과 관련된 모든 도구들, 접시 수저 포크 같은것들이

정말정말정말 더럽습니다. 하여 음식은 나름 맛이며 향이며 은근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맞긴 하지만, 먹을때마다 이 한 숟가락안에 음식이 많을까 세균이 많을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것만 빼면. 먹을만 합니다.

이상한건 엄청 먹어대는거 같은데도 살이 조금씩 빠져서…이건 좋긴 한데 뭐랄까 여기서 빠지는 살은 살이 빠진다기보다 뭔가 피골이 상접해가는 느낌…이라기엔 아직 볼다구에 남은 살이 너무 많긴 합니다만 뭐 여하튼 그렇습니다.

Q : 한국은 이렇게 더운데 거긴 얼마나 덥겠어요.

A : 죄송하지만 지금은 여기가 더 시원합니다. 낮 기온은 31도 이지만 습도가 낮아서 한국처럼 무덥진 않구요. 그래도…덥긴 덥죠. 보조배터리에 꼽혀져 있는 미니 선풍기가 최선을 다해 저를 돕고 있습니다.

Q : 그러게 거긴 뭐하러 갔습니까?
A : 그러게 말입니다. 계속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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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신붑니다. 호기롭게 뉴욕을 떠나서 아프리카에 들어온지도 한달정도가 되었습니다.

위에는 시간이 없으신 분들을 위한 짧은 버전이구요. 지금부터는 주저리주저리, 그간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길어질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여기는 인터넷이 안되어서 일단 워드에 적고 나중에 인터넷 되는 곳(걸어서 10분정도 나가면 3G 신호가 미약하게나마 잡히는…곳이 있습니다. 인터넷 되고 앉을수 있는 돌덩이가 있어서 제가 스타벅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에 가서 올릴 생각입니다.

생각해보면…한달간..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서 그것 참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뉴욕에서 두바이, 두바이에서 다르에스살람, 다르에서 므완자까지 25시간의 여정으로 이곳에 도착한다 말씀드렸었지만,

시트콤은 처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뉴욕 JFK 공항에서 이륙직전에 타이어에 펑크가 났습니다. 정말 뭔가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타이어가 터져서 기다려달라고…해서 3시간을 기다렸고, 비행기가 지연이 되었고 다음것도 지연이 되었고 여차저차하여 결과적으로

총 70시간만에 므완자에 도착하게 되었었습니다. 중간에도 비행기가 끊임없이 바뀌고 짐이 내렸다 실렸다를 반복하며 뭐지? 아프리카가 나를 거부하는건가? 하는, 사실 걱정이여야 하는데 기대? 이대로 입국거부당해서 한국으로? 좋은데? 뭐 이런 기대감도 있었지만

고생은 고생대로 시키더니 순탄히 입국이 되어버려서 네, 탄자니아에 들어온지 한달이 되었습니다.


탄자니아는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같이 쓰지만 대부분 일하는 곳에서는 현지인들을 위한 스와힐리어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때문에 8월부터 11월까지 네달간 언어학교에 들어갈 예정이구요.

6월 말에 입국했기 때문에 학교들어가기 전까지 한달정도가 비게 되는데, 이 시간동안

미파(MIPA)라는, 지도에도 없고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그래서 그런지 신기하게 모기도 없고 암튼 뭐든지 죄다 없는 곳에서,

도깨비의 나라죠. 단풍국의 그것도 퀘벡 출신의 할아버지 신부님과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신부들이 적다보니 선교사(한국에는 잘 없는 직분입니다만 굳이 비유를 들자면 교리교사+사무장+사목회장+사무원)라는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제가 있는 곳이 이 선교사들을 위한 학교입니다.

벌써 오늘로 온지 3주가 되었고 아, 이곳에 오기전 부기시에서 동기신부인 이창원 신부님과 함께 일주일을….이때에도 정말 너무 말도 안되는…하지만 제법 감동적인 그런 시간을 보냈었는데요, 이건 다음에 따로 적겠습니다.

물과 전기와 인터넷. 이 세가지가 없는 곳에서의 삶을 상상해본적이 없었어서…사실 처음 한동안 고생을 많이 했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을 정도로 처음엔 뭐랄까. 그냥 멘탈이 녹아내렸다. 는 표현만 계속 떠올렸던것 같은데요.

몸에서 점점 냄새가 나는 일에 익숙해지고, 팔과 다리에 눌러붙어 지워지지 않는때를 보며 어쩌면 얘네가 자외선을 조금은 막아줄지도 몰라. 이런 갸녀린 희망따위를 가져보기도 하고, 같은 속옷을 5일 정도 입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며,

아니 사실 절대 익숙해질수 있는 일은 아닌거 같지만 여하튼 그냥 그런갑다. 하고 조금은 생각하게 될 수 있을때가 되자.

그래. 지금쯤 한번 생존 보고를 하자. 라는 생각이 들어 적게 되었습니다.

서론이 이렇게 기니 본론은 얼마나 길어질까요……

라는 생각에 본론없이 결론으로 가보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에 계신 신부님 때문이였습니다. 단풍국 퀘벡출신의 신부님이신데 아프리카에 오신지 20년이 넘으신, 연세가 얼추 70가까워 보이시는(정확하게 여쭙지는 못했음) 이 신부님의 모습이

정말 많은 순간에 너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와서, 말도 안되는 순간들을 더 말도 안되는 할아버지 신부님의 모습으로 퉁쳐낼 수 있었던듯 합니다.

몸에서 나는 냄새는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시고 옷은 항상 인부들마냥 죄다 꾀죄죄하며 하루종일 땀에 쩔어 계시면서도 멈추지 않고 무언가 일을 하고 계시는. 그러다가도 한번 웃으면 그 웃음이 어린아이처럼 너무나도 해맑아 할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참 좋은 분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또한 제법 재미있는 분이라 몇번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었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신부님 : 여기 밤에는 뱀이 있으니까 밤에는 꼭 후레쉬를 가지고 다녀야 해.
나 : 아, 뱀이 후레쉬를 보면 도망가나요?
신부님 : 아니 뭔소리야. 니가 뱀을 봐야지. 보면 도망가라고.



신부님 : 지금은 전기가 없지만 신청은 해놨으니 전기만 들어오면 우리 냉장고도 사고 할거야.
나 : 아, 한 1-2주안에 들어오는건가요?
신부님 : 아니 뭔소리야. 신청한지 9달이 지났는데. 올해 안에 들어오면 다행이지.



신부님 : 니가 여기서 운전을 하다보면 개를 칠수도 있고 염소를 칠수도 있고 양을 칠수도 있을거야. 하지만 소랑 당나귀는 치면 안돼.
나 : 아, 인도에서처럼 그것들이 여기서 중요한건가요?
신부님 : 아니 뭔소리야. 차가 부서지자나. 걔넨 크단말이야.


네, 뭐 이런 대화해가며 이걸 재미지게 살고 있다고 해야할런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버티고 있습니다.

정말 놀랍고 다행인것은 제가 지금 이걸 적고 있는 시간이 7월 23일인데요. 어제. 그러니까 22일.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뭔가 극적으로 일이 타결되어서 제가 있는 기간안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고, 사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도 노트북이 전원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핸드폰도 마음껏 충전할 수 있구요. 이 전기의 은총이란게 얼마나 크던지. 성령의 은사안에 넣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 안된다는건 압니다만. 여하튼 어제부터 그렇게 전기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어서 그나마 조금 나아졌습니다.

아…소개하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는데요. 위에 식기 관련된것들이 더럽다고 했던…

물이 없진 않습니다만 많이 모자랍니다. 올해는 우기에도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가뜩이나 건조한 이곳에 물이 더 귀해졌는데요

그러다보니 설거지를 할때에 정말 극도로 물을 아낍니다. 그래서 왠지 저기에 닿기만 해도 그릇이 썩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정말 더러운 물로 일단 한번 헹군후 빨래용 세제(전 그게 퐁퐁같은것일줄 알았는데 세제를 쓰더군요)로 닦고

정말 더러운 물로 한번 헹군 다음에,

다시 더러운 물로 닦아낸 후에,

제법 더러운 걸레로 그릇을 닦고나면

여전히 더러운 느낌의 그릇이 완성됩니다.

이거…..괜찮나요? 하고 물어봤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해맑게 그럼! 깨끗하자나! 라고 대답하셔서 그냥 그러기로 했습니다.

마실물도 뭔가 말도 안되는 통에 담긴걸 컵에 쪼로록 따르시더니 그걸 한잔 들이키시곤

“이건 안전해”

라고 하시는데, 와 세상에 설득력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수가 있나. 도무지 믿음이 눈꼽만큼도 생기지 않지만 이 역시 답이 없어서 그냥 그러기로 하고 살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너무 길어져 당황스럽지만 뭐 어쩌겠어요. 제 블로그니 제 맘대로 하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마지막으로.

평소 강론에도 그랬고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이기도 했어서,

그래도 이곳이 장점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을 고민했던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놀랍게도.

없어요. 단 한개도 찾질 못했습니다. 미세먼지? 라고 생각했다가 여기 흙먼지가 더 심각해서 그것도 아니고 뭐 이런식이였는데요.

최근에. 딱 하나. 정말 처음으로 한개를 찾아냈습니다.

은하수를 매일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사진은 다음에 언어학교를 가서 인터넷이 조금더 자유로우면 그때 좀 많이 올리구요

오늘은 이 한장만 첨부하렵니다.

이것만 보고는 또 다들 너무 좋네요. 아름답네요. 하지만 절대 그정도 아니구요. 왠일인지 은하수가 그렇게까지 선명하진 않습니다. 다만 장노출로 사진을 찍으면 이렇게 나오는 거라서요. 사실 강원도 산골? 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은하수입니다.

아 남반구라서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자리를 보는것도 신기하긴 하지요. 북극성은 당연히 보이지 않고 남십자성이라던지 센타우루스자리, 독수리 자리 등을 볼 수도 있습니다…..만.

요즘에 밤마다 자꾸 하이에나가 나타나서 밤에 나와서 사진찍는게 제법 무섭긴 합니다. 돼지를 벌써 두마리나 잡아가서요. 밤에 자다 난데없이 돼지 멱따는 소리에 깜짝 놀라 깨곤 했습니다.(돼지 우리가 지척에 있어서 수시로 들리는 소리긴 합니다.)

자기보다 크면 공격하진 않는다는데 그래도 사고가 있는 편이라서요. 조심하라고는 하더군요. 후레쉬로 비췄다가 울타리 너머로 눈을 마주친적은 한번 있었습니다. 무서워서 조심조심 방에 잘 들어왔었더랬죠.

뭐 여하튼 그러니 좋아보인다. 역시 잘 지내시는군요. 다행이네요. 등의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아주시기를. 그저 기도해주시는 것이 제일 최고이고,

돌아오면 맛있는걸 사주겠다. 뭐 이런 말이 가장 위로가 되니 그 외의 말들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나아졌으나 아직 예민한 상태라 그런 말들에 괜히 욱하게 되는. 상태인듯 합니다.

뭔가 끝이 이상하지만…

여하튼. 8월 초에. 언어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자리 잡히고 나면 다시 또 생존신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많이 덥다고 하는데 ….그래도 에어컨 있잖아요. 괜찮으실 거에요. (읭?)

더운 여름 잘 지내시기를. 화이팅. 아멘. 알렐루야.


p.s - 다 적고보니 이곳에서 제가 하는 일이 뭔지…궁금하실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집 앞에 할아버지 신부님이 심어놓은 레몬트리가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대단히 아끼는 녀석인데요. 염소떼가 매일 와서 이걸 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얘네들을 쫓아내며 지내고 있습니다. ㅡ.,ㅡ


p.s의 p.s - 이걸 장점이라 해야 할지 단점이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정말정말 정말 안갑니다. 멈춰있는것 같아요. 처음 온지 4일째 되던날. 느낌에 한 한달 지냈던거 같아 달력을 보고 이제 4일 지나갔단걸 알고 절망한적이 있었는데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게 야속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에게 꼭 강추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멈춰있는 기분을 느끼실 수 있어요. 하루가 일년같습니다.

생각해보니….느낌엔 온지 한 반년은 훨씬 더 된거 같은데 이제 한달 되었군요. 허허.